LIFEBOOK

Sample · 에세이

일단 해 보고, 같이 해 보자

친구들과 영화를 찍고 부모의 시간을 담기까지

범이 · 영상 PD의 산문집 · LifeBook을 만든 사람이 직접 답하고 엮은 실제 책입니다. 지은이는 필명 '범이'로, 사진 속 얼굴은 가렸습니다. · PDF로 받기

이 책의 바탕이 된 답변 18개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나요? 나는 그 말에 동의하나요?

추진력이 강하고 항상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이라 한다. 그리고 항상 생각한 걸 해내는 사람이며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동의하지 않는다. 나도 사람이기에 항상 생각한 걸 해내지 못한다. 허나 많은 사람들처럼 해 볼까 하고 생각만 하고 멈춰 있지 않을 뿐이다. 일단 되든 안 되든 '나'라는 사람은 시도를 해 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항상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이기에 AI가 그걸 실현해 주기 시작한 순간 내가 부족해서 못 해 보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손대어 보고 있다. 내가 쓴 가사로 음악도 작곡해 보고 공부해 보고 싶었던 명리학을 AI로 프로그래밍하여 AI 사주 서비스도 만들고 지금은 이 LifeBook이라는 사람들의 일생을 남겨 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처럼 나는 생각한 것을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항상 상상을 실현시켜 내는 사람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좋아해 온 것이 있나요? 처음 좋아하게 된 날을 기억하나요?

생각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로 기억한다. 나의 생각을 글을 쓰면 항상 상장을 받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아, 나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더욱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요즘도 퇴근하면 집에서 혼자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그걸 음악이나 시나리오로 혹은 이렇게 어떠한 서비스로 만드는 걸 취미이자 일로서 즐기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아침부터 밤까지 따라가 보면 어떤 모습인가요?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도 알려 주세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하루를 맞이한다. 집에서도 일하다 보니 자는 시간이 항상 늦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같이 잠에서 깬 우리 강아지 달이와 레오에게 인사를 건넨 뒤 화장실로 가서 출근을 준비한다. 씻고 나와서는 오늘 입을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만지고 집을 나선다. 차를 타고 회사로 출근을 위해 발길을 서두른다. 가는 길의 시작은 혼자이지만 중간에 친한 친구를 한 명 태워서 같이 출근한다. 출근해서는 같이 출근한 친구와 함께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출근의 시작을 알린다. 밥을 먹고는 방송 콘텐츠를 제작하며 회사의 업무를 진행한다. 11시 30분 남들은 열심히 점심을 먹으러 가는 사이 나는 차로 다시 돌아가 잠시 부족했던 잠을 이룬다. 1시까지 그렇게 낮잠을 청하고 나면 다시 편집실로 복귀하여 콘텐츠 제작을 마무리한다. 이러면 거의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그럼 사무실에서 식권을 챙겨 점심을 안 먹어 허기진 배를 채우러 다시금 구내식당으로 발길을 이동한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짐 정리를 한 후에 19시가 되면 퇴근을 한다. 출근을 같이했던 친구를 다시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길 다양한 얘기를 나눌 때도 혹은 같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면서 퇴근할 때도 있고 항상 다양하게 즐기며 행복한 퇴근 시간을 맞이한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그렇듯 나를 반겨 주는 달이와 레오에게 인사를 청하고 산책을 같이 나갔다 돌아온다. 그리곤 아기들을 씻기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오늘의 하루를 정리하거나 AI와 함께 새로운 것을 탐색하거나 만들어 놨던 것들을 고도화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23시 즈음 방으로 들어가 유튜브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의 한 주의 평일은 이렇게 평탄하게 반복된다. 하지만 이런 하루가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하루의 시작에서 눈을 뜨면 누구보다 먼저 반겨 주는 우리 강아지들, 출근길을 항상 함께해 주는 친한 친구,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 편하게 뭐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차려져 있는 구내식당의 아침밥과 저녁밥, 그리고 행복한 퇴근길 속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 집에 돌아오면 항상 반겨 주는 우리 강아지들, 그리고 하루의 사유를 정리하는 나만의 시간까지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매일마다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스토리로 인해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낸다.

자주 가는 단골 장소가 있나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그려 주세요.

올해 4월 30개월 2년 반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많이 힘들어했었다. 물론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많은 사랑을 했었지만 이번에 첫사랑이라는 것을 해 본 것 같다. 사실 난 혼자 있는 것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별이란 상황을 맞이한 당시 친구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서 혼자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혼자 술로 많이 달랬었다. 하지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술만 마실 거냐는 내면에서의 질문이었다. 그 생각이 든 후에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것이 우선 걷는 것이었다. 걸으며 혼자 사유하고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혼자서 평소에는 안 가던 서점도 가서 책도 읽어 보고 전시회도 즐겨 봤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왜 진작 안 해 봤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세상에도 살아 보고 전시를 보며 내면을 한층 견고하게 만들고 이번 이별이 정말 힘들었지만 많은 배움을 주고 갔다고 나는 확신한다. 전시와 독서에도 많이 빠졌지만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사실 혼술 바이다. 처음에는 그냥 bar인 줄 알고 갔던 곳이었다. 하지만 혼술 바라는 곳은 내가 생각했던 곳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서로 대화를 나누고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요즘에는 변질되어 새로운 헌팅의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혼술 바는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해 보며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마주하고 새로운 사람의 관점과 생각을 알아 갈 수 있는 나에게는 가장 큰 도서관 같은 공간이다. 새로운 사람, 내가 가지지 못해 봤던 직업, 내가 해 보지 못한 경험, 내가 해 보지 못한 생각, 다양한 사람을 마주하고 얘기를 나눌수록 배울 것도 많고 알아가는 것도 많은 나에겐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도서관 같은 곳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 살아 본 집 중 가장 그리운 집은 어디인가요?

첫 자취방인 세종의 '영상마을 아파트'가 내 생에 가장 그리운 집이다. 첫 자취라는 것도 크지만 그곳엔 나의 20대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기 때문이다. 처음 하는 자취, 처음 사는 지역, 새로 놓인 환경 속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 나를 말할 때 대학생 때를 빼놓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보냈던 시간들이고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항상 눈뜨면 옆에 있는 친구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함께 먹고 자고 놀고 일하고 공부하며 쌓았던 추억들, 그 공간은 '집'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공간이다. 먼 곳으로 떠난 건 아니지만 가끔씩 지나가면 정말이지 그리운 공간이며 친구들과 만나면 아직도 그때의 얘기가 끊이지 않고 나오는 우리 모두의 행복과 추억, 청춘이 담긴 평생을 잊지 못할 공간이다.

다시 먹을 수 없어서 그리운 맛이 있나요?

다시 먹을 수 없어 그리운 맛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대학 시절 자주 가던 식당들이다. 또와갈비, 모꼬지에, 또와포차. 지금도 가장 친한 대학 친구들, 형들과 동기들이랑 거의 매일같이 그곳을 드나들었다. 밤에는 또와포차에서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점심에는 또와갈비에서 해장을 했다. 그리고 다시 또와포차에 가고, 다음 날은 모꼬지에에서 해장을 하고. 그렇게 같은 하루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지금은 세 곳 모두 사라져서 다시는 그 맛을 볼 수 없다. 사실 내가 그리운 게 그 맛인지 그 시절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때는 정말 맛있게 먹었고, 지금도 자꾸 생각나는 그리운 가게들이다. 또 하나는 외할아버지가 타 주시던 냉커피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는 여름마다 매일같이 냉커피를 드셨다. 집에서 냉면 그릇만 한 큰 그릇에 얼음을 한가득 넣고 커피를 타서, 컵에 따라 드셨다. 옆에서 한 모금씩 얻어 마시면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이제는 다시 마실 수 없는 커피가 되어 버렸다. 여름마다 마시던 그 냉커피, 지금은 왜 그 맛이 안 날까.

가장 싫어하는 계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는 겨울이 가장 싫다. 우선 너무 춥다. 추워서 싫다. 난방비도 너무 많이 나온다. 대학 시절 영상마을 아파트에 살 때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LPG 가스를 썼는데, 조금만 틀어도 20만 원이 우습게 나왔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그런데 겨울이 정말 싫은 이유는 따로 있다. 겨울은 날씨만 추운 게 아니라 내 주변까지 춥게 만든다. 겨울이 끝나면 한 해가 지나간다. 한 해가 마무리되고, 떠나간다. 그런데 바뀌는 건 해만이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도 함께 떠나가고, 조금씩 멀어진다. 한 해와의 이별, 그리고 사람들과의 이별과 멀어짐.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겨울은 익숙함을 그리움으로 바꿀 준비를 시키는 계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어디였나요? 그곳에서 본 한 장면을 자세히 들려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올해 여름 친구들과 다녀온 횡성 여행이다. 친구들과는 1년에 두 번씩 여행을 다니지만, 이번 여행이 특별했던 건 '랜덤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지도에 펜을 던져서 펜이 떨어진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해진 곳이 횡성이었다. 계획은 하나도 없는 즉흥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루지도 타고, 펜션도 저렴하게 예약했다. 게다가 넓은 펜션에 예약한 손님이 우리뿐이었다. 한여름 오후 두 시, 우리끼리만 쓰는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물은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그래도 수심이 어른들이 놀기에 딱 좋고 넓어서 정말 재밌게 놀았다. 족구도 하고 농구도 했다. 밤에는 편하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매번 하는 같은 이야기지만, 대학 시절 추억은 몇 번을 꺼내도 즐거웠다. 사회자 없이 할 수 있는 마피아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며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주변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매년, 매 여행마다 다 같이 모여서 행복하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든 함께 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앞으로도 매번 새로 바뀔 것 같다.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이번에도 대학 친구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리 멀리 있어도 힘들다고 한마디만 하면,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서라도 한걸음에 달려와 주는 친구들이다. 늘 틱틱거리고, 티격태격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래도 슬플 때나 행복할 때나, 하다못해 맛있는 걸 먹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서로 못 미더워하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많이 기대고, 서로 헐뜯으면서도 누구보다 서로를 챙기고 아낀다. 내 친구들은 그런 이상한 존재들이다.

가족에게 들은 말 중 지금도 마음에 남은 말이 있나요?

엄마와 아빠가 둘 다 늘 나에게 해 주시는 말이 있다. "너는 우리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라. 엄마 아빠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너도 우리한테 해 줄 필요 없다. 우리도 즐겁게 살 거니까, 너도 누구보다 즐겁게 살아라. 한 번 사는 건데, 남한테 피해만 안 주는 일이라면 후회 없이 다 하고 살아라." 두 분은 매번 이렇게 말씀하신다. 정작 두 분은 하고 싶은 것도 못 하시고, 후회도 많이 남기셨으면서.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걸 후회 없이 다 해 보며 살고 있다. 그 말씀은 꼭 지킬 생각이다. 그런데 하나는 못 지킬 것 같다. 엄마 아빠는 나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사셨으니까. 아들이 하고 싶은 거 다 해서, 꼭 성공해서, 신경 좀 써 볼게요. 이 말만큼은 엄마 아빠 말 못 들을 것 같아요.

지금 하는(또는 오래 해 온)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그 일을 하는 하루의 한 장면을 보여 주세요.

나는 PD(Producer)를 업으로 삼아 살고 있다. 시작은 이랬다.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늘 처음에 불타올랐다가 금방 식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저것 간접적으로라도 다 해 볼 수 있는 PD라는 직업을 가져 보자. 그런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막상 시작하니 너무 즐거웠다. 내가 떠올린 생각이 시나리오가 되고, 그 시나리오가 영상이 되고, 결국 내 생각이 세상에 나온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지금은 처음 꿈꾸던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져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그래도 내가 만든 영상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 뿌듯함을 느끼며 계속 정진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자면, 첫 단편영화 「死진 - 죽음의 진실」을 만들던 때다. 그때 우리는 영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도 이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학에서 스태프를 모았다. 처음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무시도 많이 당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영화냐", "너희가 무슨 영화를 찍냐" 같은 말이 수없이 들려왔다. 촬영 도중에는 자동차 사고로 차를 폐차해야 할 만큼 큰일도 있었다. 촬영을 접어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했다. 촬영을 반년 미루고, 그동안 각자 맡은 파트를 더 공부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렇게 꼬박 1년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 정말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처음으로 '같이의 가치'를 느꼈고, 그게 내가 가장 크게 여기는 가치가 되었다. 무시당하던 우리는 다음 해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같이 과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날 정도였다. 지금 보면 정말 형편없어서 끝까지 보기도 힘든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은 내가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만큼 일해 봤고, 처음으로 인정도 받아 봤다. 그리고 PD를 꿈꾸며 들어간 대학에서 지금의 친구들을 만났다. 나에게 PD는 직업 하나로만 부르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안겨 준 단어다.

크게 실패하거나 넘어졌던 경험이 있나요? 그 일에서 무엇이 남았나요?

대학 시절 내 목표는 하나였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 맞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들자.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개인 사업자를 내고, 친구들과 ‘POV Pictures’라는 영상 제작 프로덕션을 차렸다. 주로 MCN(유튜브 매니지먼트) 쪽 일을 중심으로 운영했고, 편집과 촬영 외주를 많이 맡았다. 그러다 한 모델 업체에서 협업 요청이 들어왔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리허설 촬영까지 마쳤다. 그런데 페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결국 일은 무산되었다. 너무 어리고 급하게 시작한 사업이라 후회도 남는다. 그래도 그때의 사업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해 봤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끈끈해졌으며 실력도 한층 성장했다.

학창 시절의 나를 한 장면으로 보여 준다면 어떤 장면일까요?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걸 좋아했고, 놀기 좋아하고 말썽도 꽤 부리던 그런 학생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보다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 게 늘 먼저였다. 누구보다 대학 시절을 재밌게 보냈다고 자부할 만큼 즐겁게 지냈다.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려 놀면서도, 그 와중에 개인 작품 활동은 한 번도 끊기지 않게 꾸준히 했다. 오죽했으면 내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으면 교수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였다. "범이는 깨우지 마라. 단편영화 만든다고 매일 밤새는 애다. 걔 깨우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 그냥 놔둬라." 그 한마디면 그 시절의 나는 다 설명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사람이다. 어떤 순간이든 내 곁에 있어 주는 친구들. 묵묵히 뒤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 내가 무엇을 하든 믿어 주고, 응원해 주고, 힘이 되어 주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 이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것 같다.

나를 위로해 준 말이나 장면이 있나요?

이번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정말 많이 힘들었다. 늘 옆에 있던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난다는 게 너무나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하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다 내려놓는데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응원해 주었다. "고생 많았다." "항상 응원한다." "무엇을 하든 네 편이다."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 여러 사람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나 오늘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해 봤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처음 꺼내 본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친구들은 그날 바로 나에게 와 주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내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건 '감사함'이다. 고마움은 누구나 느낀다. 하지만 그걸 말로 잘 표현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막상 말로 전하자니 낯간지럽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그랬다. 하지만 상대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직접 말로 전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이번 이별을 겪으며 불현듯 그걸 깨달았다. 그 뒤로는 사소한 일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꼭 표현한다.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때는 마다하지 않고, 적어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만큼은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마음은 언젠가 더 크게 돌아온다는 걸 몸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년 전의 나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요?

1년 전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에 혼자 있는 걸 정말 못 견뎠다. 외로움도 많이 탔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을 몰랐다. 그런데 이별을 이겨 내려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금은 누구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기고 있다. 주말이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부담 없이 집을 나선다. 내 템포대로 걷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한다. 읽고 싶었던 책을 혼자 읽고, 생각에 잠긴 채 길을 걷다 보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어느 날은 혼자 백화점에 가서 사람들이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전시도 혼자, 내 호흡에 맞춰 천천히 본다. '혼자'라는 건 마냥 외롭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안 보이던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고, 듣지 못했던 '나'의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와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고마운 것은 무엇인가요?

지금 이 순간 가장 고마운 건, 이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아버지다. 우리 아빠는 늘 쉴 틈 없이, 주말도 없이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다. 아빠가 취미 생활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모습은 손에 꼽을 만큼밖에 본 적이 없다. 아빠는 무너져 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아기 어렸을적에'라는 아기 앨범을 만들어 사업을 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녀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앨범을 만든 것이다. 그 앨범을 보고 자란 아들은 이제 가정을 더 화목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부모님의 일생을 잊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LifeBook을 만들었다. 사진과 영상은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LifeBook은 그 사람의 일생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차례

  1. 상상을 서비스로 만드는 취미
  2. 반복되는 평일이 행복한 이유
  3. 사라진 식당에 두고 온 시절
  4. 여행마다 새로 쓰는 가장 좋은 날
  5. 반년을 미뤄 완성한 첫 영화
  6. 리허설까지 마친 우리의 기획
  7. 혼자 보내는 시간을 배우다
  8. 고마운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9. 아빠는 앨범을 나는 책을

프롤로그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달이와 레오가 나를 반긴다. 함께 산책을 다녀와 아기들을 씻기고 나면 나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하루의 일을 정리하기도 하고, 만들던 것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한다. 집에서도 할 일이 이어져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지만,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늘 여러 가지다. 글로 적어 놓은 생각이 음악이 되기도 하고, 시나리오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 쓸 수 있는 서비스가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만 하던 일에 직접 손을 대 볼 수 있게 된 요즘이 그래서 즐겁다.

주변에서는 내가 생각한 것을 꼭 해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고마운 말이지만, 나에게도 끝내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 다만 될지 안 될지를 생각하다 멈추기보다 우선 시도하는 쪽을 택한다.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어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은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하루에는 혼자 앉아 있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도 있고,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구내식당의 밥도 있다. 한동안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내 속도로 걷는 주말도 즐긴다. 나는 함께 있을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를 모두 알아 가는 중이다.

1. 상상을 서비스로 만드는 취미

나는 내 생각을 글로 써서 상장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는 생각을 적어 내면 늘 상장이 돌아왔고, 나는 내가 생각을 표현하는 데 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 나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잘하는구나’ 하고 깨달은 뒤로는 글을 쓰는 일이 더욱 좋아졌다. 머릿속에 있는 것을 꺼내 놓는 일이 즐거워진 시작을 돌아보면, 나는 그때의 상장을 만난다.

어릴 때부터 나는 생각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좋아했다. 글로 적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바꾸어 보는 재미는 지금도 남아 있다. 요즘도 퇴근하면 집에서 혼자 생각을 글로 정리한다. 일하는 시간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무언가를 쓰지만, 내게는 그것까지 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방식으로 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정리한 생각을 음악이나 시나리오로 만드는 일을 즐긴다. 같은 생각이라도 가사로 쓸 때와 시나리오로 옮길 때는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무엇으로 만들지를 고르는 것부터 내 취미에 들어간다. 글로 적은 것을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바꾸는 과정에는, 처음 생각을 떠올렸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내 능력이 부족해서 손대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인공지능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런 일들을 하나씩 시도하고 있다. 내가 쓴 가사로 음악을 작곡해 본 것도 그중 하나다. 가사를 적는 데서 멈추지 않고 음악으로 만들어 보니, 하고 싶었던 일의 다음 과정에 직접 손을 뻗는 재미가 생겼다.

공부해 보고 싶었던 명리학도 인공지능으로 프로그래밍했다. 관심을 두었던 것을 공부할 대상으로만 남겨 두지 않고, 직접 만들어 볼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활용해 AI 사주 서비스를 만들면서 생각을 서비스로 옮기는 일도 해 보았다. 내게 작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일은 취미이자 일이라서, 즐기는 마음과 무언가를 완성하려는 마음을 따로 나누기 어렵다.

주변에서는 나를 추진력이 강하고 항상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생각한 것을 늘 해내는 사람이라는 평가도 받는데,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도 생각한 것을 언제나 해내지는 못하며, 결과를 내는 것보다 되든 안 되든 우선 시도하는 쪽에 가깝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도 듣는다. 누군가 내게 기대는 마음은 고맙지만, 내 안에는 아직 해 보지 못한 것과 해내지 못한 것이 함께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일생을 남기는 LifeBook 서비스도 하고 있다. 한 사람의 삶을 남기는 일을 서비스로 만드는 동안에도 나는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상상을 실현하는 사람이고 싶다.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이라는 이름보다는 먼저 해 보는 사람이라는 쪽이 내게 더 잘 맞는다. 퇴근 후 혼자 글을 정리하는 시간에는 음악과 시나리오, 서비스로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들이 놓인다. 나는 그중 하나를 붙들고 글을 쓴다.

2. 반복되는 평일이 행복한 이유

6시 30분에 눈을 뜨면 함께 잠에서 깬 달이와 레오에게 먼저 인사한다. 집에서도 일을 하느라 늘 늦게 자는 내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하루 중 가장 힘들다. 함께 사는 강아지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아직 덜 깬 몸을 움직여 화장실로 향한다. 씻고 나와 오늘 입을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만지면 집을 나설 준비가 끝난다.

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출근길 중간에 친한 친구 한 명을 태우면 혼자였던 차 안에 동행이 생긴다. 직장에 도착해서도 친구와 구내식당으로 가 아침을 먹는다. 무엇을 먹을지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차려진 밥을 먹는 일이 좋다. 출근하느라 서두르던 움직임을 멈추고 밥 앞에 앉는 시간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방송 콘텐츠를 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장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제작하던 화면에서 눈을 떼고 차로 돌아가는 때는 11시 30분, 다른 사람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무렵이다. 나는 점심을 먹는 대신 오후 1시까지 부족한 잠을 보충한다. 일을 하던 자리에서 잠시 벗어나 눈을 감고, 오후에 다시 움직일 때까지 몸을 쉬게 한다.

낮잠을 마치면 편집실로 돌아와 하던 콘텐츠 제작을 마무리한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사무실에서 식권을 챙겨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점심을 거른 터라 저녁밥 앞에서는 허기가 분명하다. 끼니를 고르는 수고 없이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밥은 하루의 양쪽에 놓여 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짐을 정리하고 19시에 퇴근한다.

돌아가는 차에도 아침에 함께 출근한 친구를 태운다. 퇴근길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둘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이야기를 할 때는 말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랫소리로 차 안이 채워진다. 나는 친구와 함께하는 이 시간을 행복하게 누린다. 매일 같은 길을 오가도 그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집에 도착하면 달이와 레오가 나를 반겨 준다. 나는 강아지들에게 인사하고 함께 산책을 나간다. 집까지 왔던 발걸음이 이번에는 달이와 레오와 함께 다시 바깥으로 향한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둘을 씻긴다. 밖에서 함께 걷는 일부터 돌아와 씻기는 일까지 마쳐야 컴퓨터 앞에 앉을 차례가 온다.

컴퓨터 앞에서는 그날 하루를 정리한다.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을 하던 시간 뒤에, 내 사유를 들여다보는 이 시간을 나는 소중히 여긴다. 인공지능과 함께 새로운 것을 탐색하기도 하고, 이미 만들어 둔 것들을 더 낫게 다듬기도 한다. 새것을 찾는 날에는 관심이 향하는 쪽을 따라가고, 만들었던 것을 고도화하는 날에는 손대던 작업을 다시 펼친다. 퇴근한 뒤에도 일을 놓지 못해 잠자리가 늦어지는 밤이지만, 내 관심에 시간을 쓰는 즐거움이 있다.

내 평일은 대체로 이런 순서로 평탄하게 반복된다. 나는 그 반복을 무척 행복하게 느끼며,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즐긴다. 23시쯤에는 하던 일을 두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무언가를 만들던 손을 쉬고 유튜브를 본다. 오늘 내가 다듬던 화면 대신 보고 싶은 영상을 띄워 놓고 하루를 마친다.

3. 사라진 식당에 두고 온 시절

나는 밤이면 또와포차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점심에는 또와갈비에서 해장했다. 다시 또와포차에 갔다가 그다음 날에는 모꼬지에에서 속을 풀었다. 대학 친구들, 형들, 동기들과 거의 매일같이 드나들었으니, 술과 해장 사이를 오가는 비슷한 하루가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함께 먹고 마시던 사람들은 지금도 내가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다.

다시 먹을 수 없어서 그리운 맛을 꼽으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그 식당들의 음식이다. 또와갈비도, 모꼬지에도, 또와포차도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그리운 것이 음식 맛인지 그 시절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오늘 무얼 먹을까 생각하다 보면 이제 갈 수 없는 가게들이 자꾸 생각난다.

그 식당들을 다니던 시절, 나는 세종의 영상마을 아파트에서 처음 자취를 했다. 처음 살아 보는 지역에 들어가 새로운 환경에 놓였고, 새롭게 친해진 친구들이 생겼다. 익숙한 생활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씩 내 생활을 만들어 가던 때였다. 지금까지 살아 본 집 가운데 가장 그리운 그곳에는 내 20대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눈을 뜨면 곁에 친구들이 있었고, 하루를 마칠 때도 함께였다. 자취방에서 같이 먹고 자는 사이, 따로 약속을 잡지 않아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였다. 우리는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일도 하고 공부도 했고, 나는 대학 시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한다. 가장 행복하고 즐겁게 지낸 그 시간을 빼놓으면 나를 제대로 말하기 어렵다.

나는 첫 자취방에서 먼 곳으로 떠나 살고 있지는 않아서 가끔 그곳을 지나간다. 그럴 때면 몹시 그립고, 친구들을 만나면 아직도 당시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을 함께 썼던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기억이 있어서 이야기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나에게 영상마을 아파트는 집이라고만 부를 수 없는 곳이며, 우리 모두의 행복과 추억과 청춘이 담긴 공간이다.

또 하나 그리운 맛은 어릴 때 외할아버지 곁에서 얻어 마시던 냉커피다. 외할아버지는 여름마다 매일 냉면 그릇만 한 큰 그릇에 얼음을 한가득 넣고 커피를 타셨다. 큰 그릇에서 컵으로 따라 드시는 커피를 나도 옆에서 한 모금씩 얻어 마셨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 내 몫으로 가득 받은 한 잔이 아니라 곁에서 조금씩 마시던 커피였는데도 그 맛은 오래 남았다. 이제 다시 마실 수 없는 냉커피여서인지, 지금 마시는 냉커피에서는 그때의 맛이 나지 않는다.

여름의 큰 그릇과는 별개로, 자취방의 겨울을 생각하면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영상마을 아파트에서는 도시가스가 아니라 LPG가스를 썼는데, 난방을 조금만 틀어도 요금이 쉽게 20만 원을 넘겼다. 추워서 난방을 켜면서도 얼마가 나올지 신경을 써야 했으니, 겨울은 추운 데다 돈까지 많이 드는 계절이었다. 나는 겨울이 싫다는 말을 할 때 추위와 난방비부터 꼽는다.

하지만 겨울이 정말 싫은 이유는 내 주변까지 춥게 느껴져서다. 한 해가 저물고 해가 바뀌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떠나거나 조금씩 멀어진다. 날씨가 추워지는 일과 익숙한 사람이 멀어지는 일이 같은 계절에 겹치면, 나는 지나가는 한 해를 선뜻 보내기가 어렵다. 겨울은 익숙함을 그리움으로 바꿀 준비를 시키고, 나는 아직 곁에 두고 싶은 얼굴들을 생각하며 그 계절을 지난다.

4. 여행마다 새로 쓰는 가장 좋은 날

지도에 펜을 던졌고, 펜이 떨어진 곳은 횡성이었다. 친구들과 펜이 떨어지는 곳으로 떠나기로 하고 목적지를 무작위로 정했다. 나는 친구들과 1년에 두 번씩 여행을 다니는데, 올해 여름에는 갈 곳을 정하는 방식부터 달랐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지 차근차근 고르는 대신 펜에 맡기고 나니, 출발하기도 전에 여행의 재미가 하나 생겼다.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횡성에서 친구들과 루지를 탔다. 미리 짜 둔 일정표를 따라가지 않아도 함께 할 일이 생겼다. 넓은 펜션도 저렴하게 예약했는데, 예약한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숙소를 함께 쓸 다른 손님 없이 우리끼리 지내게 된 것까지, 준비 없이 떠난 여행에서 반가운 일이 겹쳤다.

한여름 오후 두 시에는 우리끼리 쓰는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여름 한낮인데도 물은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워서, 들어서는 순간에는 더위보다 물의 온도가 선명했다. 수영장은 넓었고 수심도 어른들이 놀기에 딱 좋았다. 처음의 차가움은 밀려나고 친구들과 노는 재미가 커졌다. 물에서 신나게 논 데다 족구와 농구까지 하며 몸을 움직였다.

밤에는 편하게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시절 추억은 매번 꺼내는 이야기인데도 다시 나누면 즐거웠다. 새로운 이야기를 해야만 자리가 재미있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이미 함께 아는 시간을 되짚는 동안에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낮에는 몸을 써서 놀고, 밤에는 말로 오래 함께했던 시간을 오갔다.

평소에 나는 이 친구들과 틱틱거리고 티격태격하며 싸우기도 한다. 서로 못 미더워하면서도 가장 많이 기대고, 헐뜯으면서도 누구보다 챙기고 아낀다. 슬프거나 행복할 때뿐 아니라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들이 대학 친구들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나면 같이 누리고 싶어지는 상대가, 평소에는 내내 곱게 대하는 사람들만은 아니라는 게 우습다.

힘들 때 내 곁에 있어 준 사람들도 이 친구들이다. 멀리 있어도 힘들다는 한마디에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서라도 한걸음에 달려와 준다. 나는 해가 갈수록 주변 사람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느끼지만, 매년 여행 때마다 함께 모여 행복하게 노는 친구들이 있다. 힘든 날에도 즐거운 날에도 언제든 볼 수 있다는 마음이 있어서, 함께 지내는 동안 늘 살갑게 굴지 않아도 서로에게 기댄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사람이다. 어떤 순간에도 곁에 있어 주는 친구들이 있고,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믿어 주고 응원하며 힘이 되어 주는 소중한 이들이 곁에 있다는 감정은 행복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여행지에서 마음 놓고 노는 시간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기쁨을 누린다.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올해 여름의 횡성이지만, 앞으로는 그 자리가 매번 새로 바뀔 것 같다. 그 여름 밤에 우리는 추억 이야기만 하다 그치지 않고 사회자 없이 할 수 있는 마피아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며 머리를 맞댔다. 어떻게 해야 사회자 없이도 게임이 될지 궁리하는 일까지 우리에게는 놀이였다. 술을 마시며 편하게 나누던 말들이 이번에는 아직 없는 게임을 향해 모였다.

5. 반년을 미뤄 완성한 첫 영화

나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단편영화를 만드느라 매일 밤을 새우던 때였다. 교수님들은 “범이는 깨우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고는, 단편영화 때문에 밤새는 아이니 깨우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며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위 말하는 양아치였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기를 좋아했고 말썽도 꽤 부렸다. 대학에서도 노는 모습은 비슷해서 매일같이 친구들과 어울렸고, 누구보다 재미있게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한다. 다만 공부보다 만들고 싶은 영상이 늘 먼저였고, 놀면서도 개인 작품 활동은 한 번도 끊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처음에는 불타오르다가도 금방 식곤 했다. 여러 일을 간접적으로라도 해 보고 싶어 PD를 선택했고, 그 일을 꿈꾸며 들어간 대학에서 지금의 친구들을 만났다. 막상 일을 시작하니 너무 즐거워서, 이것저것 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고른 일이 처음으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됐다. 떠올린 생각을 시나리오로 옮기는 동안 행복했고, 그것이 영상이 되어 세상에 나올 때는 내 생각을 밖으로 꺼내 놓는 기쁨을 누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첫 단편영화 「死진 - 죽음의 진실」이다. 당시 우리는 영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 작품을 만들려고 대학에서 제작진을 모았다. 시작부터 주변의 무시를 많이 받았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영화냐”라는 말을 들었다. “너희가 무슨 영화를 찍냐”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 작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우리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인지부터 의심받았다.

촬영 도중 자동차 사고가 났고, 차를 폐차해야 했다. 촬영을 접어야 하나 고민할 만큼 큰일이었다. 이제 막 배우며 만들던 영화 앞에, 작업을 아예 멈출 수도 있는 문제가 놓였다. 사고 뒤 우리는 다시 의기투합해 촬영을 반년 미뤘다. 그동안 각자 맡은 분야를 더 공부하며 실력을 갈고닦았다.

당장 촬영을 이어 가는 대신, 나는 내가 맡은 일을 배우는 데 시간을 썼다. 함께 시작한 사람들도 저마다의 몫을 익혔고, 우리는 각자의 준비를 작품 안에 보태야 했다. 모르는 채 시작한 일을 끝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를 완성했을 때는 꼬박 1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며 처음으로 ‘같이의 가치’를 느꼈고, 지금도 그것을 가장 크게 여긴다. 다음 해에는 우리를 대하는 주변의 태도가 달라졌다. 우리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실력자가 되어 있었고, 함께 과제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넘쳐났다. 나는 PD 일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며 이 일을 통해 처음으로 인정도 받아 봤다. 내게 PD는 단순히 직업 하나를 가리키는 말보다 훨씬 크다.

지금 나는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PD로 일한다. 처음 꿈꾸던 일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내가 만든 영상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즐거움에 더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쓸모가 있는지도 마음에 두게 됐다. 도움이 되는 영상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계속 정진하고 있다.

정작 첫 영화는 지금 보면 형편없어서 끝까지 보기도 힘들다. 지금의 나와 우리는 이 작품에서 출발했지만, 애정과 별개로 화면 속 부족한 솜씨는 눈에 걸린다. 그때는 완성에 꼬박 1년을 썼는데, 이제는 완성된 영화를 끝까지 보는 데 애를 먹는다. 첫 작품 앞에서 나는 여전히 조금 난처해진다.

6. 리허설까지 마친 우리의 기획

전역하자마자 개인사업자를 냈다. 친구들과 차린 영상 제작사에는 POV Pictures라는 이름을 붙였다. 함께 영상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사업으로 옮기는 데 오래 뜸을 들이지 않았다. 사업을 시작한다는 일의 무게보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대학 시절 내가 바라던 것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눈치 보지 않고 만드는 일이었다. 무엇을 만들지도 중요했지만, 누구와 만들지도 그만큼 중요했다. 마음이 맞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영상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내 생각을 혼자 밀어붙이기보다 우리끼리 뜻을 맞추어 작업할 자리를 원했다.

제작사는 유튜브 매니지먼트를 중심으로 운영했다. 편집 외주를 많이 맡았고, 촬영 외주도 많이 했다. 촬영에서는 현장에서 영상을 담아야 했고, 편집에서는 찍어 온 장면들을 살피며 흐름을 만들어야 했다. 같은 영상을 놓고도 찍을 때와 이어 붙일 때 해야 하는 일은 달랐다. 우리는 두 작업을 두루 맡으며 함께 일하는 시간을 쌓아 갔다.

그러던 중 한 모델 업체에서 협업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친구들과 업체와 함께할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리허설 촬영까지 마쳤다. 머릿속의 구상을 실제로 찍어 보면 기획할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마주하게 된다. 생각으로 채워 두었던 부분을 화면에 담아야 했고, 촬영한 결과를 놓고 프로그램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런데 보수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결국 업체와의 협업은 무산됐고, 준비했던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영상 안에 무엇을 담을지 정하는 것과 별개로, 업체와 우리 사이에는 맞춰야 할 조건이 있었다. 기획을 끝내고 촬영에 들어간 뒤에도 일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협업에서 겪었다.

지금 돌아보면 너무 어리고 급하게 사업을 시작했다는 후회가 남는다. 시작할 때의 나는 영상을 만드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었고, 사업에는 그 밖의 일도 따랐다. 그때의 선택을 돌아보는 마음과 작업에 쏟았던 마음은 같지 않다. 서둘러 출발한 것은 아쉽지만,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해 봤다.

내게 그때의 사업은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이다. 함께 일을 맡고 풀어 가는 동안 친구들과는 더 끈끈해졌고, 우리 실력도 한층 자랐다. 가까운 사이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가 함께 일을 책임지는 사이가 되는 동안, 서로를 대하는 마음에도 두께가 생겼다. 지금도 그 시절로 눈길을 보내면 완성된 결과물 곁에 멈춘 작업이 있다. 리허설까지 마친 프로그램은 끝내 그다음 촬영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우리가 함께 만들던 영상들 사이에 남아 있다.

7. 혼자 보내는 시간을 배우다

혼자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달래던 때가 있었다. 올해 4월, 30개월, 그러니까 2년 반을 함께한 연인과 헤어진 뒤였다. 많이 힘들었고,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그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싶었다. 여러 번 사랑했지만 첫사랑은 이번에 처음 해 본 것 같았고, 헤어진 연인은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나는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정말 못했다. 집에서는 외로움을 많이 탔고, 누구와도 약속이 없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랐다. 이별을 맞았을 당시 친구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언제까지 술만 마실 것이냐고 스스로 물었다. 그 질문이 떠오른 뒤에는 술 대신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걷는 것이었다. 발을 움직이는 동안 생각을 하나씩 꺼내 놓고, 걷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정리했다. 머릿속에 담아 두었던 것들을 되짚으며 사유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고는 평소에 가지 않던 서점에도 혼자 가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내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내가 살아 보지 않은 다른 사람의 세상에 머물기도 했다.

혼자 찾아간 전시회도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작품 앞에서는 누구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내 호흡대로 천천히 머물렀다. 전시를 보고 나면 내면이 한층 견고해진 듯했고, 독서와 전시에 빠질수록 왜 진작 해 보지 않았나 아쉬웠다. 이별이 힘들었다는 마음은 그대로지만, 그 시간을 지나며 많은 것을 배웠다는 데에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이별 이후 가장 많이 찾은 곳을 꼽으면 사실 혼술 바다. 처음에는 그저 일반적인 바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예상과 달리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어우러지는 곳이었다. 술을 마시러 들어간 자리에서 대화 상대가 생기고, 서로의 이야기가 오갔다. 혼술 바를 헌팅을 주선하는 장소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가져 보지 못한 직업과 해 보지 못한 경험을 지닌 사람과 마주 앉으면, 나와는 다른 관점과 생각을 접한다. 나는 상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에 귀를 기울인다. 책에서는 글을 따라 다른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면, 이곳에서는 눈앞의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직접 들려준다. 그래서 나에게 혼술 바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도서관 같은 공간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편해졌다. 이별을 이겨 내려고 시작한 시간이었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즐긴다. 주말이면 원하는 시간에 부담 없이 집을 나서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은 채 하고 싶은 것을 한다. 내 속도로 길을 걷다가 생각에 잠기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이 꼭 외로움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전에는 듣지 못했던 내 목소리도 조금씩 들린다. 요즘은 나 자신과 더 친해지려고 한다. 어느 날은 백화점에 가서 사람들이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가만히 본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않고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는 밤도 있다.

8. 고마운 마음을 말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나 오늘 정말 힘들었어”라고 말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꺼내 본 말이었다. 그 말 한마디에 친구들은 그날 바로 나에게 와 주었고, 나는 찾아온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힘들다는 말을 하고 나니, 친구들 앞에서 더는 눈물을 참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늘 곁에 있던 소중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컸다. 함께 있는 데 익숙했던 만큼, 이제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버거웠다. 이별은 관계 하나가 끝나는 일로 그치지 않았고, 나는 그 상실감 속에서 하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내가 하던 것을 내려놓는데도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았다. 왜 그만두느냐고 탓하는 대신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응원해 주었다. 무언가를 해내고 있을 때가 아니라 더는 붙들고 있기 힘들어 손을 놓았을 때, 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 멈춘 나에게도 건네줄 말이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여러 사람에게서 “고생 많았다.”라는 말을 들었고, 그 말은 내가 애쓴 시간을 알아주는 위로였다. “항상 응원한다.”라는 말에는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이 있었다. “무엇을 하든 네 편이다.”라는 말은 선택보다 나를 앞에 놓아 주었다. “언제든 돌아와도 좋다.”라는 말까지 듣고 나니, 내려놓은 자리로 돌아가는 길도 닫혀 있지 않았다.

나는 감사함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예전에는 나도 고마운 마음을 말로 잘 표현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충분히 느끼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상대도 당연히 알 것 같았으며,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면 낯간지러웠다. 고마움을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느낀 마음을 상대에게 건네는 데 서툴렀다.

이번 이별을 겪으며 상대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직접 말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과, 내게 건네는 응원의 말을 듣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마음을 짐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도 내 고마움을 그저 짐작하며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때 마다하지 않는다. 적어도 소중한 사람들에게만큼은 받은 마음에 보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건넨 마음이 언젠가 더 크게 돌아온다는 것을 몸소 알았기에, 사소한 일에도 고마운 마음을 꼭 표현한다. 여전히 조금 낯간지럽더라도 상대가 이미 알 거라며 삼키지 않고, 고맙다는 말을 끝까지 입 밖으로 꺼낸다.

9. 아빠는 앨범을 나는 책을

나는 아버지가 만든 아기 앨범을 보며 자랐다. 이름은 ‘우리 아기 어렸을적에’다. 아버지는 자녀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고 기록하려고 그 앨범을 만들었고, 그것으로 사업을 했다. 내 어린 날을 담아 두려던 마음과 무너져 가는 가정을 지키려던 마음이 그 앨범에 함께 있었다.

아버지는 주말도 없이 가족을 위해 일했다. 쉴 틈 없이 살아가는 아버지 곁에서, 나는 아버지가 자기 취미를 즐기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모습도 손에 꼽을 만큼만 봤다. 아버지의 일상에서 내가 자주 본 것은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지, 일을 내려놓고 쉬는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늘 같은 당부를 한다. 자신들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살라고 한다.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나도 두 분에게 보답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자식에게 무언가를 바라며 꺼내는 말이 아니라, 내 몫의 삶을 마음껏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다.

두 분은 자신들도 즐겁게 살 테니 나 역시 누구보다 즐겁게 살라고 한다. 한 번 사는 동안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 일이라면 후회 없이 다 해 보라는 것이다. 그 당부에는 꼭 무엇이 되어야 한다거나 어느 만큼 이루어야 한다는 조건이 없다. 나는 무엇을 시작할지 고를 때, 결과보다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볼 여유를 얻는다.

정작 두 분은 나 때문에 원하던 일도 못 하고 살았고, 후회도 많이 남겼다. 그래서 나는 그 권유를 가볍게 넘길 수가 없다. 부모님이 미뤄 둔 즐거움까지 내가 대신 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 건넨 말씀은 꼭 지킬 생각이다. 요즘 나는 마음이 향하는 일을 후회 없이 해 보며 산다.

다만 성공해서 부모님을 챙기겠다는 마음까지 내려놓지는 않으려 한다. 내가 바라는 일을 해 나가는 동안에도 엄마와 아빠를 내 삶 바깥에 두고 싶지는 않다. 두 분에게 받은 자유와 두 분을 챙기려는 마음은 내 안에 함께 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말씀만큼은, 아들이 끝내 말을 안 듣는 쪽으로 남겨 두고 싶다.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은 아버지다. 내가 이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사람도 아버지다. 막상 내 삶을 글로 남기는 자리에 서니, 무엇을 적을지 살피는 내 마음에 부모님이 들어온다. 내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도 두 분이 살아온 시간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LifeBook을 만든 것은 가정을 더 화목하게 하고 싶어서다. 부모님의 일생을 잊지 않고 기록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에게 익숙한 엄마와 아빠라는 자리뿐 아니라, 각자의 삶으로 살아온 시간도 남기고 싶다. 내가 함께한 날들만으로 두 분의 삶을 다 채우지 않는 기록을 바란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서 시작해 그때의 기억으로 들어가곤 한다. 나는 LifeBook을 통해서는 한 시절을 넘어 그 사람의 일생을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엄마와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즐거워했고 무엇을 아쉬워했는지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아직 내게는 두 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에필로그

나는 부모님의 일생을 오래 떠올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은 모습을 보는 것과,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알아가는 일은 내게 조금 다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이 지내면서도, 나는 부모님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 더 알고 싶다. 두 분의 삶을 남기는 일을 생각하면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가 한층 각별해진다.

LifeBook은 사람들의 일생을 남겨 주는 서비스다. 나는 이것을 만들면서 기능을 갖추는 일뿐 아니라, 그 안에 누구의 어떤 시간이 담길지도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남기고 싶은 것은 부모님의 일생이고, 그 바람에는 우리 가족이 더 화목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함께 살아온 사이에도 새롭게 알아갈 것이 있다는 기대가 지금의 나를 움직인다.

내가 만드는 것이 누군가에게도 그런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을 가족이나 친구라는 이름 말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기만의 생각도 가진 한 사람으로 만나는 자리다. 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알아가는 일이 좋고, 그것을 오래 남길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 앞으로 이 안에 담길 일생들을 생각하면, 아직 손대어 보고 싶은 일이 많다.

부모님의 시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 한쪽에는 두 분이 지금부터 즐길 시간에 대한 바람도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두 분에게도 그런 즐거움이 더 많았으면 한다. 지나온 날을 담을 책에 앞으로 좋아하게 될 것들을 위한 자리도 남아 있으면 좋겠다.

LifeBook

질문 3개면, 프롤로그는 무료

답을 적어 보고 내 책의 첫 장을 먼저 읽어 보세요. 마음에 들면 그때 한 권으로 완성합니다.

LifeBook 만들기